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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잡다한 여행

"호텔 여행이 좋습니다. 꼭 직업 때문은 아니고요."

우린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방문을 열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번잡한 공항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난무한 도심과는 다르게 호텔은 타지에서 여행자를 보듬어 주는 유일한 공간이니까. 물론 캐리어와 배낭도 내팽개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러니까 호텔 로비에서 호텔리어의 친절한 미소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여행의 공간에 적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호텔리어들이 언제나 로비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다. 때론 그들도 여행자의 신분으로 호텔을 방문한다. 그렇다면 호텔리어의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7년 차 호텔리어 김상원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상원/33세/호텔리어

새해를 맞이했는데 호텔 분위기는 어떤가요?

정신없었던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연초가 지나 겨우 숨을 고르고 있네요.

 

여행을 목적으로 호텔에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은가요?

저희 호텔은 명동에 위치해 여행 목적의 투숙객분들이 거의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특히 외국인 비율도 상당하고요.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는 로비가 고객들이 맡기신 캐리어들로 가득하답니다.

 

항상 여행자를 마주하면 늘 여행을 떠나고 싶을 것 같아요.

의외지만 저 같은 경우 여행을 적극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진 않아요. 여행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설렘이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인식이 저에게는 일의 개념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거든요.

 

직업 특성상 평일에 쉬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마음에 드는 동네 카페에 가서 사색하거나 책 읽는 시간을 즐겨요. 집이나 회사 주변의 익숙한 동네도, 처음 가보는 동네도 다 좋습니다. 사실 익숙한 동네라고 해도 안 가본 골목길을 가보는 것도, 새로운 동네를 가보는 것과 같거든요. 매일 보는 건물 뒤에 새로운 길이 있었고 거기에 좋은 카페가 있었다! 이거 엄청난 쾌감이거든요. 저에겐.

보통 이런 식으로 동네 카페 혹은 유서 깊은 유적지에 가보는 걸 좋아해요. 유적지라고 해서 거창한 것도 아니고요. 정말 서울 한복판에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거나 우리 회사 옆이 그 옛날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가 있었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은근히 뿌듯하고 재밌어요.

 

상원씨는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나요?

가보고 싶은 곳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고 싶다는 어떤 동기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동기는 여행을 갈 때마다 다르고요. 가장 최근에 갔던 경주는 제가 신라를 좋아했고 어렸을 때 느꼈던 경주와 지금 느끼는 경주가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어요.

 

경주에서는 어떤 재미난 걸 찾으셨나요?

딱 추워지기 직전에 경주에 다녀왔어요. 정말 거의 20년 만에 다녀온 것 같아요. 분위기 좋은 카페도, 맛집도 가곤 했지만 왕릉과 유적지가 가장 매력적이었답니다.

학교 다닐 때 역사 과목을 좋아했고 특히 신라를 좋아했어요. 어떻게 천년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지... 그게 신라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특히 황룡사지 터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지금은 모두 불타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그 주춧돌에서 어떤 특별함을 느꼈습니다. 꼭 복원해서 그 옛날 멋진 모습의 절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호텔리어로써 여행에서 숙소를 고르실 때 어떤 점을 눈여겨보는지 궁금해요.

호텔리어도 똑같습니다. 위치, 가격, 숙박 리뷰, 규모, 호텔 등급 여러 가지를 따져서 나에게 교집합인 호텔을 예약해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오픈한 지 5개월에서 1년 남짓 된 호텔들이 가장 컨디션이 좋습니다. 시설, 리넨 그리고 어메니티가 비교적 새것일 확률이 높거든요. 그리고 너무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호텔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모든 체계라던지 시설이 미비한 곳이 많아 불편을 겪을 수도 있어요.

 

호텔 이외의 숙소도 이용하시나요?

호텔 이외 숙소 중에 이용해본 건 게스트하우스뿐이네요. 게스트하우스의 경우 정겨운 느낌도 들고 취사도 가능해서 호텔보다는 좀 더 자유로웠습니다.

사실 호텔이 겉만 번지르르하지 뭐만 하려고 하면 제약이 많은 곳입니다. 전화기를 들어도 돈, 냉장고 미니바 하나 먹어도 돈, 룸서비스 하나도 돈, 돈돈돈이죠. 말하고 나니 서글프네요. 에어비엔비는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이용해 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이용해 보고 싶은 호텔이 있나요?

몇 년 전부터 호캉스가 유행이잖아요. 물론 그 덕에 저도 바빴지만요. 저는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JW메리어트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싶어요. 전형적인 네임드 5성 호텔 인 데다가 1년 전 리모델링했거든요. 호텔리어로써 다른 호텔 호텔리어들의 어피어런스, 그리팅, 에티튜드 같은 것도 궁금하고요. 객실 내부도 샅샅이 탐구해보고 싶어요.

 

반대로 여행자의 입장일 때는 호텔의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체크하실 것 같아요.

직업이 직업인지라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동선과 각 업장의 위치 파악부터 해요. 그리고 직원분들이 응대할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 살펴보게 되고요. 그래도 가장 꼼꼼히 보게 되는 건 객실 상태나 구조입니다.

 

응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가끔은 무례하고 불친절한 손님들도 있잖아요. 그런 일을 겪을 때면 어떻신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려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런 고객들을 겪으면서 터득한 건 그때그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냉정을 잃으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불친절한 고객을 응대할 때면 아기와 대화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겁니다. 그리고 최대한 말을 아끼고 경청하려고 해요.

마음속에 담고 있던 화는 다행히 퇴근하면 사라지는 편이에요. 사실 매번 그런 고객들이 있으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의외로 좋은 고객분들이 훨씬 많답니다.

 

좋은 고객과의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좋은 고객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일터에서도 대부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굳이 꼽아보자면 비가 동남아의 우기처럼 억수로 쏟아지는 여름날이었는데, 공항 가는 택시를 바로 잡아달라는 요청을 하는 고객이 있었어요. 폭우 때문에 정말 앞도 안보였어요. 그런데 하필 택시 배차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 직접 나가서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30분 넘게 비 쫄딱 맞아가며 겨우겨우 택시 한 대를 잡아 태워 보내드렸답니다.

비록 유니폼은 홀딱 젖었지만 나중에 온라인 후기에 제 이름과 함께 고마웠다고 남겨주셨어요. 그리고 그분은 저희 호텔 단골이 되었답니다.

 

매일 타인과 함께 마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어느 관계에서나 선을 지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지만 아무래도 고객과 종사원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다른 관계보다 이해관계가 훨씬 더 뚜렷하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그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리어로써, 객실을 판매하는 판매자로써, 한 회사의 이익을 책임지는 종사자로서 본분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본분을 지키면 문제 될 게 없어요.

 

직업이 개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치잖아요. 호텔리어가 되고나서부터 여행에 대한 상원씨의 인식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호텔리어가 되고 나서 여행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원래 여행 갈 때 숙박이나 교통에 대해서는 먹고 보는 것에 비해 투자를 좀 더 많이 했던 편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직업적인 것과는 별개인 듯해요. 여행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즐거움이잖아요. 저에게 큰 즐거움은 여행을 떠나 좋은 호텔에서 쉬는 것이니까요.

 

상원씨에게 설렘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 또 어떤 게 있나요?

생각해보면 설렘과 즐거움을 주는 게 참 많습니다. 새로운 카페에 가서 멍 때리고 있거나 좋아하는 축구를 본다거나 직접 공을 차는 것. 일하다가 잠시 쉴 때 캔커피 한잔도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에요.

 

여행에서 나에게 잘 맞는 숙소를 찾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호텔을 선호합니다. 호텔 리뷰도 보고 오픈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성향이나 여행 동반자, 금전 상황 등 숙소를 찾을 때의 고민거리는 너무나 많아요. 그래도 첫눈에 여기다! 싶은 곳이면 후회는 하지 않을까요?

 

상원씨는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장소예요. 예전에 가봤던 곳을 다시 가보면 곱씹어보는 재미도 있고 그사이에 새로운 곳, 보지 못했던 곳도 보게 되고요.

또 누구와 갔는지도요.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영원히 추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게 여행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