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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중국

대륙의 모든 것은 산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이 강하기로 소문난 중국인들. 그러나 자존심 강한 그들도 산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경외를 마다하지 않는다. 깊고 광활한 산맥은 대륙의 자긍심이며, 산을 굽이돌아 쉼 없이 이어진 협곡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혼이 깃들어 있다. 그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구한 역사와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가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천하제일 오악지존 태산

중국 오악(五岳) 중 동쪽에 있어 동악태산(東岳泰山)으로 불리는 태산(1545m)은 중국 산둥성 중부 타이안(泰安)에 있다. 1987년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산은 황제와 하늘이 통하는 신성한 산인 동시에 중국문화의 보고로 진시황을 비롯해 공자, 이백, 두보 등 중국을 대표하는 명인들도 태산에 올라 시와 노래를 남겼다. 이 산에 얽힌 이야기들 때문일까, 태산을 오르는 내내 구전으로만 전해졌던 비밀스러운 장소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다.

태산 아래에 위치한 대묘(岱廟)는 산을 오르기 전,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장소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도 태산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서 먼저 봉선의식을 치렀다. 대묘에는 태산이 오악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의미히는 오악독종비가 있다. 황제들마저 꼭 방문했다는 부분에서 태산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경외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이어진 케이블카는 약  2km거리를 10분 정도에 걸쳐 운행된다.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찔하지만 그럼에도 태산의 장엄한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어떤 중국인 아저씨 무리는 케이블카를 더 타고 싶어서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천가(天街)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남천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으로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있어 태산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장소다. ‘하늘의 길’이라는 이름처럼 해발 1500m 정도의 높은 곳에 길이 나 있어 하늘을 걷는 기분이 든다. 

벽하사(碧霞祠)는 태산의 여신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으로 송나라 때인 1009년에 축조되었다. 예전부터 소진관, 벽하영궁이라고 불렸지만 1770년 중건된 후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은 제단 앞에 무릎 꿇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소원이 이루어지면 3년 안에 태산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니 이곳에 다시 올 그날을 기다려 본다.

태산의 정상비는 산에서 가장 높은 옥황정(玉皇顶)에 있다. 이곳에 모셔진 옥황묘(옥황상제를 모신 자리)에서 소원을 비는 중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옥황상제는 도교에서 가장 높이 모시는 신이다. 정상비 주변은 소원을 빈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자물쇠가 잔뜩 걸려있어 보는 것만으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중국인에게 영적인 의미가 있는 태산이기에 산에서 나는 돌멩이도 덩달아 유명하다. 태산에서 난 돌을 회사나 공장 앞에 두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한다. 그래서 타이안에는 태산석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다. 물론 이곳 상점에서 판매하는 돌들이 진짜 이 산에서 나온 돌덩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늘과 땅을 나누는 천계산

하늘과 산의 경계라는 천계산(天界山). 이곳은 한국 관광객들이 매우 많아 등산복을 입은 한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천계산 입구 카페에서 막걸리와 파전 등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판매하며, 관광지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 비빔밥과 닭백숙을 판매하는 한식당이다.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석애구(錫崖溝)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현지 대학생. 그 모습을 보며 '피아오량(漂亮, 아름답다)'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니 밝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왕망령에서부터 석애구, 천계산까지 이어지는 관광코스는 중국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천계산 관광지 입구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경이롭다. 산 밑에서부터 관광지 입구까지 사람들을 태우는 셔틀버스가 다닌다. 이곳을 지나는 도로가 매우 인상적인데,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절벽에 터널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 천계산 내에는 현지인들이 장사를 하기도 한다. 한 봉지에 20개가량 들어있는 살구의 가격은 30위안(약 5,000원). 산 주변 마을에서 직접 채취한 특산품들은 맛이 좋고 가격도 저렴해 천계산 관광의 필수상품이다.

중국의 영산을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산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였다. 지구 어디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 같은 중국인들도 산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적인 경외심은 아니었다. 사람과 산이 삶과 역사의 동반자로 함께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중국인들에게 삶의 기반이 되었던 산.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 자리에 남아 대륙을 보듬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