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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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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다시 꺼내보다 (Drive My Car)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운명이 우리에게 주는 시련들을 참아내요. 지금도, 늙은 후에도 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말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뒤돌아보면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감정을 아껴두듯 당장이라도 보고 싶지만, 나중을 기약하는 영화들이 있다. 오래 묵혀두지 않았지만, 밑바닥부터 끌어올린 맛이 깊다. 원작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읽었다. 그냥 봐도 좋고 원작을 보고 난 뒤는 더 좋..
구름 사진첩에서 최근 찍었던 사진들을 보니 유독 구름이 많이 보였다. 왜 구름일까, 라고 생각해봤는데 첫째 요즘 날씨가 자주 좋았었고, 두 번째로는 느즈막히 흘러가는 것이 또 좋아서였던 것 같다. 확실한 건 오전 9시의 밍밍한 구름보다는 오후 6시의 물렁한 구름이 더 좋고, 그것이 주말이라며 더할 나위 없다는 점.
파란 강과 분홍나무 “나누어짐이 오래가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짐이 오래가면 반드시 나누어진다”라는 구절로 삼국지의 대서사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출발도 합쳐짐에서 비롯되는데. 출생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이유로 모인 유비, 관우, 장비는 형제로 다시 태어난다. 이들이 뜻을 모아 형제의 의를 다진 ‘도원결의’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맺었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도 하고 또 좋아하는 과일인지라 익숙한 복숭아지만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고 지내다가, 한강에서 복숭아나무를 벚꽃으로 오해하고 나무와 꽃의 모양을 알게 됐다. 개나리, 매화, 목련, 벚꽃 등 봄꽃 대장급들이 사라지면 복사꽃은 느즈막이 피어난다. 그러니 봄과 여름이 합쳐지는 이 애매한 계절도 나름의 사연..
자화상 동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처럼 고흐도 자화상을 즐겨 그리곤 했다. 그는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자화상은 일종의 자기고백과 같다"고 표현했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그의 어떤 얼굴보다도 유명하다. 군중들의 어깨너머로 소용돌이치는 배경 속 부쩍 수척해진 고흐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병의 심각성을 깨닫고 생 레미 요양원에 입원하며 그린 6점의 자화상 중 하나로 1889년 9월에 그린 것이다. 초점 잃은 녹색 눈동자에선 고통 속에 살던 그의 인생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일 년 뒤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그릴 수 없게 될걸 알았다는 듯.
​잔디밭 가장 믿음직스러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리곤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거지.
나의 여름 이야기 ​ 덥고 힘든 계절이지만 몇 가지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서 버틸만해. 부드럽고 산뜻한 리넨 셔츠, 발걸음이 상쾌해지는 샌들, 그리고 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아이스커피. 그래서 오늘도 커피 한잔 주세요!
여름빛 능소화 ​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 주의보가 내린 날, 이 계절이 오고 나서야 능소화는 어둠 속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주황빛 얼굴을 내밀었다. 녹음이 짙어지고 세상이 같은 빛으로 물들어갈수록 홀로 보색을 차려입은 능소화는 당연 눈에 띌 수밖에. 아마 지루하고 힘든 계절에 선명함을 더하는 것이 이 꽃의 운명일지도. 그러니 이 더위가 가실 때까지의 짧은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길.
다시 시작 ​ 저녁시간이 지날 즈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하루 뭘 먹었는지, 송화랑은 잘 지내는지 물으셨다. 나는 잘 지낸다고 말했고 거긴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여긴 별일 없다고 가끔씩 내 목소리나 들려달라고 했다. 상반기가 지나고 올해도 딱 절반이 남았다. 새로운 다짐과 목표를 세우기 더없이 좋을 때. 남은 시간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