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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홍콩

거리 사진에 대한 단상 (feat. 홍콩)

Street Photography, 이름 그대로 거리를 찍는 사진의 장르다. 다큐멘터리나 보도사진처럼 현장을 생생하고 여과 없이 담아내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가볍고 자유롭다. 

거리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된다. 번잡한 시내든 도로든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단골 식당이든 상관없다. 아차, 카메라를 두고 왔다. 그러면 핸드폰으로 찍으면 된다. 

하지만 아무나 찍을 수 없는 것도 거리 사진이다. 흔한 명동 길거리를 찍었다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리 사진의 핵심은 프레임 안에 스토리를 담는 것이다. 또 길거리의 모든 것들이 노출되는 만큼 보도사진처럼 사진의 윤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나도 한때는 거리 사진에 미쳤었다. 정말 미쳐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구 셔터를 누른 적도 있다. 이건 사진을 막 시작하는 쪼렙들이 흔히 겪게 되는 중2병 같은 것이다. 때문에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힌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길에서 만나는 날 것의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스티브 맥커리, 마틴 파. 당시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은 다 그런 사진을 찍었다.

홍콩을 가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거리 사진 때문이었다. 붉은 택시, 네온사인, 빽빽한 빌딩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 거리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홍콩은 천국이다.

홍콩에서는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어디서든 멋진 피사체를 만날 수 있다. 어떤 장면을 찍어도 다 괜찮다 싶은 느낌이 든다. 구닥다리 카메라도 빈티지 룩으로 변한다.

홍콩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렸을 때 좋아하던 홍콩 영화들이 생각난다. 어렸을 적 우리집은 비디오 가게를 했었고 형과 나는 성룡인 나오는 홍콩 영화를 매일 봤다. <취권>, <시티헌터>, <폴리스 스토리> 같은 액션 영화들 말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중경삼림>, <아비정전>, <화양연화>를 좋아했다. 홍콩 특유의 퍼렇고 녹색빛의 밤이 좋았다. 물론 현란한 네온사인도 빠질 수 없지. 홍콩에서 만난 밤 풍경의 색깔도 그랬다. 

홍콩의 야경은 정말 끝내준다. 카메라 셔터를 마구마구 누르고 싶어진다. 비가 오면 도시의 불빛이 아스팔트 바닥에 반사되어 더욱 몽환적으로 변한다.

센트럴파크에서 담은 직장인들. 출근하기 싫은 건 저들도 마찬가지겠지. 좁은 땅에 빽빽하게 들어선 높은 빌딩들. 이러한 속박과 규제 속에 자유분방함이 뒤섞인 느낌이다.

페리를 타고 마카오도 다녀왔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세나도 광장 주변의 골목을 자유롭게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마카오는 영국령이었던 홍콩과는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이런 도시 특유의 감성은 거리 사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행이 끝나고 얼마 후, 홍콩에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홍콩의 거리가 자유를 열망하는 시민들로 뒤덮였고 대학생들이 우산으로 경찰이 던진 최루탄을 막아냈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고.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홍콩에서는 또다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 거대한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홍콩의 거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 NIKON D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