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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프랑스

에펠탑 이야기

"남자를 알려면 그가 착용한 액세서리를 눈여겨 봐야 하며, 그중에서도 벨트는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준다." 어느 잡지에서 본 글이다. 더불어 본문에는 고가의 명품벨트를 활용한 상황별 맞춤 코디법을 제안하며 신뢰를 높였다.

취준생 시절, 유럽배낭 여행을 떠났던 난 셀카를 찍다가도 카메라를 훔쳐간다는 도시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에 지폐를 넣을 수 있는 지갑형 나일론 벨트를 준비해 갔다. 벨트가 남자의 가치를 말하는 거라면, 내 가치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제로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엔 그곳은 소문처럼 확실히 무법천지는 아니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커다란 흑인들이 "원유로 원유로"라고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에펠탑 열쇠고리를 권유할 뿐이었다. 오히려 이들은 다국어에 능통한 맞춤형 영업사원 같았다. 하지만 이들이 팔고 있는 에펠탑 안쪽을 보면 뚜렷하게 각인된 문구가 보였다.

'Made in China'

가장 파리다운 것에서 대륙의 정취를 느끼는 불편한 진실...

파리의 랜드마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빌딩이 거의 없는 도시에 솟아난 이질적인 모습은 관광객인 나조차 조금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에펠탑은 파리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큰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탑이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환영받지 못했다. 예술가들은 물론 대다수 파리 시민들은 저 괴상한 흉물 덩어리를 어떻게든 그들의 공간에서 치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도시 어느 곳에서도 에펠탑의 눈에 띄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파리에서 에펠탑의 존재는 확실했다.

에펠탑을 꼴도 보기 싫어했던 모파상이 늘 탑 안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한들 324m의 쇳덩어리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이렇게 모두에게 천대받던 철골 덩어리가 파리 최고의 귀부인이 되어 도시의 위상을 드높일 줄 그들은 알았을까?

그해 나의 마지막 밤도 이곳 에펠탑이었다. 사실 신년맞이 불꽃놀이 정도는 기대했었는데 별다른 건 없었다. 새해맞이 행사는 또 다른 랜드마크 개선문에서 했었다고 나중에야 알았다. 자정을 넘기자 에펠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빛을 반짝였다. 이곳에서 난 어떠한 감정도 없이 홀로 새해를 맞이했다. 내 주위로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서로를 축하하고 있었다.

지나간 날을 추억하고 새로운 날을 기약하며.

모두, 그렇게 들떠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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