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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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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냄새가 이토록 좋아질 수 있다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노천탕에 몸을 맡기는 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머릿속의 모든 잡념도 함께 증발할 것만 같았다. 특히, 요즘처럼 쌀쌀해지는 계절이라면 더욱. *지난가을에 여행했습니다. 온천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마을 어느 때보다 바쁘고 더웠던 여름이었다.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을 넘어 절박함이 될 즈음, 덜컥 가을의 오이타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우리가 온천으로 유명한 이 작은 고장으로 떠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서울~부산 왕복 KTX 푯값보다 저렴한 특가 항공권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꽃양은 온천의 고장, 온양 출신이다. 그녀가 말하길 "유년시절, 주말마다 의무적으로 다녔던 동네 목욕탕마저 온천수가 펄펄 끓고 노천탕이 있었노라"라고 했다. 이런 그녀도 '겨우 온천을 즐기러..
오키나와 여행기 2 - 따뜻한 섬을 거닐다 때론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여행도 있다. 오키나와의 투명한 바다와 포근한 햇볕을 맞이하기 위해선 배낭에 여벌 옷 몇 장이면 충분하다. 특히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을 거닐 때면 여유로움은 배가 된다. 태풍은 밀어내고 바람을 흘려보내는 아늑한 신들의 섬에선 몸은 가벼워지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신성하지만 느긋한 신들의 섬 구다카지마(久高島)는 오키나와 본섬 남동부 치넨반도 동쪽으로 약 5km에 위치한 둘레 7.75km의 작은 섬이다. 섬을 가기 위해서는 난조시 아자마항에서 페리를 타고 15~25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이섬의 주민은 약 170명으로 우리나라의 여느 섬마을처럼 조용하고 한적하다. 구다카지마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선착장 주변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섬 일주를 한다. 자전..
오키나와 여행기 1 - 류큐 왕국의 발자취를 찾아서 오키나와는 1429년 쇼하시가 삼산을 통일한 이후 약 450년간 류큐 왕국으로 불리며, 1879년 일본 영토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동아시아의 해상로라는 지리적 위치와 전쟁 후 미국문화까지 혼합된 오키나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역사를 갖게 됐다. 그러나 굴곡진 사연 속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유의 명맥을 이어오며 섬 곳곳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입혀 놓았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기자기한 카페가 즐비한 현재의 오키나와 속에서도 여전히 류큐 왕국의 향기가 남아있다. 영화로운 류큐 왕국의 상징 류큐 왕국의 모든 정책과 행정은 궁궐인 슈리성에서 이뤄졌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 성은 오키나와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적지 중 하나이며, 나하국제공..
대륙의 모든 것은 산에서 비롯된다 자신감이 강하기로 소문난 중국인들. 그러나 자존심 강한 그들도 산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경외를 마다하지 않는다. 깊고 광활한 산맥은 대륙의 자긍심이며, 산을 굽이돌아 쉼 없이 이어진 협곡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혼이 깃들어 있다. 그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유구한 역사와 자연이 빚어낸 이야기가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천하제일 오악지존 태산 중국 오악(五岳) 중 동쪽에 있어 동악태산(東岳泰山)으로 불리는 태산(1545m)은 중국 산둥성 중부 타이안(泰安)에 있다. 1987년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태산은 황제와 하늘이 통하는 신성한 산인 동시에 중국문화의 보고로 진시황을 비롯해 공자, 이백, 두보 등 중국을 대표하는 명인들도 태산에 올라 시와 노래를 남겼다. 이 산에 얽힌 이야기..
느긋하거나 혹은 분주하거나 해변의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기, 괌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남쪽의 작은 섬에 도착하자 원 없이 해변을 걸었다. 도무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바다는 ‘아름답다’는 진부한 표현으론 부족했다. 끝없는 수평선 앞에서 시간은 선풍기 바람 앞의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하파데이, 차모로! 마리아나 제도 최남단에 위치한 괌은 약 546㎢의 섬으로 우리나라 거제도 정도의 크기지만 주변 섬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한다. 지리적으로는 미크로네시아에 속해있으나 엄연한 미국령 영토로 캘리포니아 주법을 따른다. 괌은 서태평양의 군사적 요충지로 지난 400여 년 동안 스페인, 일본, 미국의 통치를 받아왔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괌은 다양한 문화가 한데 뒤섞여 있다. 하지만 괌의 주인이자 원주민인..
에펠탑 이야기 "남자를 알려면 그가 착용한 액세서리를 눈여겨 봐야 하며, 그중에서도 벨트는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준다." 어느 잡지에서 본 글이다. 더불어 본문에는 고가의 명품벨트를 활용한 상황별 맞춤 코디법을 제안하며 신뢰를 높였다. 취준생 시절, 유럽배낭 여행을 떠났던 난 셀카를 찍다가도 카메라를 훔쳐간다는 도시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었기에 지폐를 넣을 수 있는 지갑형 나일론 벨트를 준비해 갔다. 벨트가 남자의 가치를 말하는 거라면, 내 가치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제로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엔 그곳은 소문처럼 확실히 무법천지는 아니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커다란 흑인들이 "원유로 원유로"라고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에펠탑 열쇠고리를 권유할 뿐이었다. 오히려 이들은 다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