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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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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뮤지엄 산 - 소통을 위한 단절 강원도 여행 중 이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뮤지엄 산(Museum SAN)에 들렸다. 원주 오크밸리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의 대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2013년 5월 개관했다. 산속에 둘러 쌓여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매표소가 있는 웰컴센터를 지나 가장 먼저 나오는 플라워 가든. 고요한 풍경 속에 느긋하게 산책하기 좋다. 입장권의 가격은 성인 18,000원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면 뮤지엄 산의 상징인 붉은 조형물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서 나오는 워터가든은 마치 본관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원과 본관을 이어주는 Archway,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는 곳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본관은 군데군..
거리 사진에 대한 단상 (feat. 홍콩) Street Photography, 이름 그대로 거리를 찍는 사진의 장르다. 다큐멘터리나 보도사진처럼 현장을 생생하고 여과 없이 담아내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가볍고 자유롭다. 거리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된다. 번잡한 시내든 도로든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단골 식당이든 상관없다. 아차, 카메라를 두고 왔다. 그러면 핸드폰으로 찍으면 된다. 하지만 아무나 찍을 수 없는 것도 거리 사진이다. 흔한 명동 길거리를 찍었다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리 사진의 핵심은 프레임 안에 스토리를 담는 것이다. 또 길거리의 모든 것들이 노출되는 만큼 보도사진처럼 사진의 윤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나도 한때는 거리 사진에 미쳤었다. 정말 미쳐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
성북구 의릉 - 한여름의 산책 장마가 잠시 숨을 고르던 주말, 오늘은 뭘하지 뒹굴거리다 의릉을 가기로 했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단 집에서 엄청나게 가깝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어서라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정류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3분만 걸어 들어가면 의릉이다.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하늘이 숨긴 명단 처장산 아래 자리한 이곳은 주변 한예종과 외대, 경희대 등 대학들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도 차분한 여유를 지니고 있다. 의릉의 입장료는 단돈 천 원. 관람객의 입장에서 부담이 없어 좋지만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명소인데 조금 더 비싸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성북구와 동대문구 주민..
방콕 여행기 1 - 우리가 이 도시로 떠난 이유 여덟 번, 5년 차 커플인 송화와 내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떠난 횟수.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여행이다. 우린 둘 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여행자의 성지 방콕을 늘 뒤로 미뤘다. 아마도 그건 방콕이 뻔한 휴양도시일 것이란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이나 인스타를 통해 방콕에도 멋진 편집숍과 예쁜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에어아시아에서 엄청난 할인 가격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그렇게 우리의 아홉 번째 여행지가 결정됐다. 티켓팅 후 다섯 달의 기다림 끝에 찾아간 방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도시였다. 이곳에선 로컬푸드와 레스토랑, 야시장과 편집숍, 툭툭이와 스카이트레인이 공존했고 이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도시에 스며들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방콕은 이 ..
소묘 - 흑백필름으로 그리다 흑백이 주는 세련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빛과 그림자가 각자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은 채 하나의 존재로 이어진다. 특히 흑백필름은 애초에 컬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촬영해야 하므로 흑백으로 변환한 디지털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니콘 FM2에 흑백필름을 감고 파리에서 로마로 넘어갔다. 이것은 조금 어두운 시선에 관한 기록이다. 파리 북쪽의 생투앙(Saint-Ouen) 벼룩시장. 파리에는 3개의 큰 벼룩시장이 있는데 남부의 방브, 동부 몽트뢰유, 그리고 이곳이다. 영화 와 의 배경으로 나와 로컬뿐만 아니라 늘 관광객으로 붐빈다. 생투앙 벼룩시장은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큰 시장으로 정말 없는 것 빼고 다 있더라.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예쁜 엽서를 몇 장 사 왔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라데팡..
홋카이도 여행 - 여기가 눈의 세상이야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 밤을 기억해본다. 그날 역시 나와 친구들은 지루한 일상과 잡히지 않는 꿈, 그 사이의 짠내나는 휴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번도 해외여행 경험이 없던 친구 B가 “이번 겨울에 눈 구경도 제대로 못 했는데, 눈 많이 내리는 데가 어디냐”라고 물었다. 문득 홋카이도가 나의 뇌리를 스쳤다. 천천히 그러나 여과 없이 쏟아지는 하얀 눈, 깊은 산속까지 침투한 얼어붙은 시간과 적막하지만 낭만적인 눈의 도시. 제법 괜찮은 이미지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 후의 일은 너무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우리는 그날 가장 저렴한 삿포로행 티켓(물론 서로의 회사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을 찾았고, 며칠 뒤 3개월 할부로 결제까지 마쳤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 그리고 한 달 뒤, ..
경비행기 체험 - 저 구름과 눈높이를 맞춰 하늘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누구나 자유롭게 날아보는 상상을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는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비행기의 엔진과 날개를 빌리면 누구나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날 시간도 여력도 없다면? 다시 천천히 눈을 돌려보자. 이번엔 조금 더 크게 뜨고. 마침내 당신 앞에 작지만 늠름한 ‘경비행기’가 보일 것이다. 경비행기란? 경비행기의 영어명은 ‘Light Aircraft’로 말그대로 작은 항공기를 뜻한다. 경비행기는 기체 크기가 작고 연료탱크 역시 작아 주로 단거리 비행 용도로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주로 농작, 레저, 행사를 위해 활용되지만, 땅이 넓고 오지가 많은 지역에..
전남 고흥 팔영산 - 다도해를 품은 여덟 봉우리 팔영산(八影山, 609m)은 한반도의 남쪽 땅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솟아있는 신비한 산이다. 고흥 주변의 다른 산들과 견주어도 높이나 산세가 깊어, 정상에 오르면 점점이 흩뿌려진 다도해의 아기자기한 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여덟 봉우리가 만들어 낸 독특한 경관은 팔영산의 진면목으로 경사진 바윗길을 넘을 때면 오묘한 긴장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마침내 그 꼭대기에 오르면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눈을 즐겁게 한다. 팔영산에 도착하면 산의 이름이 곧 납득된다. 산 아래에서 정상부를 바라보면 여덟 개의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높게 일어난다는 고흥(高興)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이 팔영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그보다 더 높은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린 나로도까지 볼 수 ..